당신 인생의 이야기
요 근래에 본 굉장한 책.
주위 사람들이 좋다, 좋다 하기에 얼마나 좋을까 싶었는데,
굉장한 sf 소설이었다.
원래 과학을 전공한 작가가 자신이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과, 상상력,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함께 굉장히 긴밀하게 섞여 있어서, '뇌가 샤워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테드창은 작품을 내는 수가 적다고 하는데 이것을 읽다보면 그러할 수 밖에 없는 성실성과 창의력을 만나 볼 수 있다.
창의력 같은 건 이 소설의 이 작가한테나 붙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나 보라고 말하고 싶다.
단편들 중, '당신 인생의 이야기' 편에 수록된
페르마의 원리 덕분에
주인공이 외계인의 언어의 원리를 깨닫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부분을 밑에 적어둔다.
아마도 테트창은 페르마의 원리를 보면서,
외계인의 언어가 이러하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 낸 것이겠지.
대단하다.
또한 페르만의 원리가 참 신기하다.
'빛이 취하는 경로는 언제나 최단시간에 도달할 수 있는 경로다.'
그러니까 빛이 출발하기 전에, 자신이 물을 지날 것인지 공기를 지날 것인지
이미 알고 나서 출발한다는 것.
그러니까 미래에 갈 길을 미리 알고 가는 것인가?
하지만 나는 '지옥은 신의 부재'가 참으로 좋았다.
보석과 같은 책이다.
p186-187
“하지만 페르마의 원리에 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그 원리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무엇인지를 꼬집어 말할 수가 없어. 물리학 법칙처럼 들리지 않는다고나 할까.”
게리의 눈에 유머러스한 빛이 떠올랐다.
“당신이 뭘 말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 그는 젓가락으로 군만두를 반으로 갈랐다. “빛의 굴절을 언제나 인과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이야. 광선이 수면에 도달하는 것이 원인이라면, 그 방향이 바뀌는 것은 결과라는 식이지. 페르마의 원리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 건 빛의 행동을 목표 지향적인 표현을 써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야. 마치 광선에 대한 계명(誡命)인 듯한 느낌이랄까. ‘네 목표로 갈 때는 도달 시간을 최소화하거나 최대화할지어다’ 하는 식으로 말야.”
나는 이 말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계속해 봐.”
“그건 물리 철학의 오래된 의문이야. 페르마가 1600년대에 그걸 처음으로 법칙화한 이래 줄곧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거지. 플랑크는 그것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쓰기까지 했어. 문제의 쟁점은, 물리 법칙의 통상적인 공식은 인과적인데 비해서, 페르마의 원리 같은 변분 원리는 합목적적(合目的的)이고, 거의 목적론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이야.”
“흐흠, 그건 흥미로운 제기 방식인데. 조금 생각을 해 볼 테니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사인펜을 꺼내 종이 냅킨 위에 게리가 내 칠판에 그렸던 것과 똑같은 도식을 그렸다.
“좋아.” 나는 소리 내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그럼 이 광선의 목표는 가장 빠른 경로를 택하는 것이라고 해. 광선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는 거지?”
“흐흠, 의인화해서 확대해석해도 무방하다면, 빛은 일단 선택 가능한 경로를 검토하고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일일이 계산해야 해.”
게리는 마지막 군만두를 접시에서 집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그의 말을 이어받았다. “광선은 자신의 정확한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아야 해. 목적지가 다르다면 가장 빠른 경로도 바뀔 테니까.”
게리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목적지가 없다면 ‘가장 빠른 경로’라는 개념은 무의미해지니까 말야. 또 해당 경로를 가로지르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그 경로 중간에 무엇이 가로놓여 있는지, 이를테면 수면이 어디 있는지 하는 식의 정보도 필요해.”
나는 냅킨에 그려진 그림을 계속 응시했다.
“그리고 광선은 그런 것들을 사전에 모두 알고 있어야 해. 움직이기 시작하기 전에 말야. 맞지?”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빛은 적당한 지점을 향해 출발한 다음 나중에 진로를 수정할 수는 없어. 왜냐하면 그런 행위에서 야기된 경로는 가장 빠른 경로가 아니기 때문이지. 따라서 빛은 처음부터 모든 계산을 끝마쳐야 해.”
나는 속으로 곱씹었다.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선택하기도 전에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 어떤 것을 생각나게 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게기를 올려다본다. “내가 고민하던 것도 바로 그거였어.”